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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 Office 2부

에디터 문희경


Editor’s Note.

지역성에 대한 탐구는 결국 지속 가능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집니다. 선택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새삼스레 이 연결고리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알면 사랑한다’. 관찰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대상의 본질을 마주하게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하면, 즉 알게 되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떠나야 합니다. 관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경계선 밖에서 홀로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 이 외로움을 끝없이 견디기로 매 순간 결심한다는 뜻입니다. 조심스럽게 사랑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주하지 않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Ae의 작업물은 이처럼 부지런한 외사랑의 결과물들입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랑의 기록들이 지니는 사회적 쓸모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Interviewee: Ae (최희, 김명년 / 이하 ‘최’, ‘김’)
Interviewer: 문희경


*본 인터뷰는 1부와 이어집니다.



아무도 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되기: 흡수하는 디자인



그러고 보니 제가 아직 이름 얘길 안 물어본 것 같네요. ‘Ae’라는 이름, 참 독특해요. 무슨 뜻인지 전혀 예측이 안 되더라고요(웃음).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저희는 먼저 '이미지'를 떠올렸어요. 쌀알 같은 원자들이 날아다니다 어딘가에 앉아 구성원이 되는 모습이요. 그걸 이름으로 표현하고자 기본 모음인 a와 e를 조합했죠. 어디든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한 거예요. 그래서 사실 이름에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저희가 의미에 대해 너무 고민하다 보니 오히려 의미를 다 빼버리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지역의 의미를 흡수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부끄럽지 않게 읽히는 모음의 조합을 찾다 보니 Ae가 됐죠. 모음 조합이라 특별한 뜻은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Ae를 만들고 브랜드로도 정리했습니다.


Ae Office 로고


'원자'라고 하는 그 모티프 이미지가 되게 재밌네요. 그 이미지가 왜 중요했는지 여쭤봐도 돼요? 왜 떠오르셨는지.
저는 지역적 내러티브가 담긴 사물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그러려면 이방인의 시선이 필요하죠. 그 지역에 속해 있으면 특별한 점을 알아채기 어려워요. 그래서 눈에 띄지 않게 날아다니다 어딘가에 안착해 그 지역을 관찰하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겉으로 봤을 때는 이방인이 현지인과 똑같아 보이지만, 이야기해 보면 조금 달라요. 저희 스튜디오, Ae도 멀리서 보면 다른 곳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브랜딩 작업에서도 점선 모티브를 많이 활용했는데, 점선 안에 하트, 별, 네모 등이 들어 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다른 점이 보이는 거죠.


흔히 브랜드 네임엔 대단한 포부나 어떤 각오, 이루고자 하는 비전 같은 것들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명쾌하게 한 줄로 설명되지 않는, 정의되지 않는 브랜드를 운영하다 보면 겪는 어려움도 있을 듯해요. 작업자는 자신을 설명해야 할 때가 참 많잖아요. 협업자를 구하거나,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가 특히 그렇죠. 이럴 때 두 분은 Ae를 어떻게 알리고 계신가요?
 사실 저희도 아직 찾아가는 중이에요. 결국엔 자기 메시지에 집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어요. 정신없이 산만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작업과 가치관에 얼마나 퀄리티 있게 집중하느냐가 관건이더라고요. 그렇기에 저희는 다양한 지역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작업물들,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등을 더 많이 정리해서 보여드리는 데 주력하려 해요. 그게 저희에게 맞는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명년 님 생각은 어떠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인플루언서가 대세인 요즘, 저희도 인스타그램 등을 더 열심히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그런 매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고, 사람들 취향을 좇다 보면 자극적인 것만 만들게 될 것 같더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건 저희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새로운 작업을 많이 만들어서 국내외 전시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참여해 실제 작품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자고 했죠. 

또 최근에 다짐한 것 중 하나는, Ae에 대한 정체성을 글로 정리하는 거예요. 저나 희님이 각자 생각이 조금씩 달라서 타인에게 설명할 때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글쓰기를 통해 머릿속 생각을 체계화하면 소개도 쉬워지고 작업에도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먼 미래엔 책으로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희의 셀링 방식은 SNS 시대에 좀 느릴지 모르지만, 전시를 통해 작품을 더 많이 선보이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보다는 소수라도 저희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희의 바람이에요.


Ae Office 웹사이트


명년 님 말씀대로 각자가 정의하는 Ae가 조금씩 다를 수 있겠네요. 브랜드는 원래 만든 사람들의 자아가 적절히 섞여가며 만들어지는 또 다른 자아니까요. 궁금해지네요. 팀 Ae로서 하는 작업과 최희, 김명년 개인의 작업은 어떻게 다를까요?
 Ae는 명년 님과 제가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치열하게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둘의 의견이 50:50으로 조화를 이루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마치 혼합 주스의 완벽한 비율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Ae 작업엔 제 자아가 온전히 다 담기진 않아요. 제 개인 작업은 콜라주나 색감을 많이 쓰는 편인데, Ae Office는 지역에서 영감받은 재료와 색감을 더 활용하거든요.

맞아요. 희 님 원래 작업은 컬러풀한데 Ae는 그렇지 않죠. 제주도, 베를린 등 각 지역에서 작업하며 나오는 색상과 질감은 그런 느낌과는 전혀 다르니까요. 희 님은 문화 자체를 파고드는 걸 좋아하고 상상을 제약 없이 펼치는 몽상가적 기질이 있어요. 반면 저는 생산 단가 등 실질적인 부분을 더 고민하고, 전자제품 같은 작업을 많이 해왔죠. 

하지만 Ae에선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희 님의 상상을 구현하는 데 제가 도움을 주고, 실험 과정의 아이디어가 작품에 녹아들기도 하면서요. 

최근 제주도의 '퍼스널 도큐먼트'라는 사진관 브랜딩을 하며 Ae의 관점에서 글을 써봤는데, 제 개인적 시선과 별로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매일 희 님과 함께 일하고 작업하다 보니 이제는 Ae가 곧 우리의 일상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엔 몰랐는데, 글쓰기를 통해 제 삶과 Ae가 거의 같은 결이란 걸 깨달았죠.


디자이너 최희 - 서울장갑사

디자이너 김명년 - 하이트진로 켈리


Ae는 어떤 유형의 클라이언트와 일할 때 빛이 날까요? Ae와 잘 맞는 고객이나 프로젝트는 어떤 형태라고 생각하시는지.

 에이전시 경험이 있다 보니 브랜딩, 제품 디자인 등 여러 분야를 다뤄봤거든요. 모두 작업하길 좋아하고 잘할 수 있지만, Ae로서는 가구와 작은 오브젝트 위주의 프로젝트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저희가 직접 돌아다니며 진행하고 있는 Ae 프로젝트를 흥미롭게 봐주시고, 그 안에서 저희가 가져온 다양한 이야기를 소스로 활용할 수 있는 분들이면 좋겠어요. 분야 상관없이 자기만의 고유 기술이 있지만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곳이요. 결국엔 저희와 비슷한 성향과 생각을 가진 분들과 일하는 것이 재미있더라구요.

 그리고 사실 Ae와는 다른 결의 클라이언트 잡을 수행하는 에이전시도 새로 런칭하려고 준비 중인데요. Ae에서는 결이 맞지 않아 보여드릴 수 없었지만, 저희가 기존에 해오던 제품 디자인, 공간 디자인, 기획, 브랜딩 업무를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맡으려고 해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물성의 무게를 짊어지는 법



Ae는 어쨌든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죠. 지역을 계속 옮겨 다니는 만큼, 재고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고 계세요?
 맞아요. 돌아다니는 걸 목표로 하다 보니 실물 제작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현물을 주고받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의 생산 및 시제품 제작 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신경 썼어요. 언제든 빠르게 작업할 수 있도록요.

어느 정도 해결이 됐지만 여전히 어려운 점도 있죠. 요즘 제작 중인 시제품 같은 경우도 최근 한국에 갔을 때 만들고, 생산 라인도 점검했어요. 계속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원격 생산 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그런 부분에선 도움을 받고 있기는 해요.

 공간 이동에 따른 추가 비용 문제도 있죠. 그래서 처음부터 이런 방식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시작했어요. 작은 가구나 라이프스타일 오브제 중심으로 브랜드를 론칭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큰 가구는 배송비나 재고 관리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작은 제품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거든요. 그리고 제품 구상 단계에서부터 포장까지 고려해서 디자인하는 편이에요. 초반에 고생 좀 했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많이 자리 잡혀서 크게 불편한 건 없어요.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브랜드를 키워나갈 계획이에요.


디자인하면 그래픽 같은 ‘이미지’ 생산을 우선 떠올리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모든 디자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로운 물성을 탄생시키는 데 있잖아요. 두 분이 몸담은 산업 디자인 분야는 더욱 그렇죠. 원고 노동을 하는 저는 일의 산출물이 99% 디지털 파일이거든요. 손에 잡히지 않아요. 저는 거기서 오는 어떤 병적인 허무함 같은 것이 늘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내가 쓴 모든 글이 종이 뭉치로 쌓인다고 상상하니, 그건 그것대로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웃음). 두 분은 내가 만든 물건들이 세상 어딘가에 계속 쌓인다는 사실이 두려울 땐 없으셨나요? 조금 짓궃은 질문이지만,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산업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끼는 지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도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에 가까워요. 클라이언트가 없을 땐 작은 재고량으로 직접 생산해서 작품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 판매하는 식이죠. 

양산이 필요할 땐 중국 OEM 등 다양한 방법을 쓰는데,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아요. 지양하려고 애쓰죠. 결국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인 것 같아요. 요즘 SNS에서 보면 화려하고 빠르게 쏟아지는 제품들이 많잖아요. 그걸 보면 '어떻게 쓸 것인가, 누가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저희가 그렇게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생산에 대한 책임감 때문일 거예요.

 저는 예전엔 그런 의식 없이 디자인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불' 작업을 하며 처음 깨달았죠. 제품이 깨져서 자연으로 돌아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걸요. 그게 충격적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업과 일할 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저희 작업만큼은 오래 쓸 수 있고 소모적이지 않은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베를린에선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생각도 더 들고요. 

제주 옹기를 만들 때 장인분들이 "플라스틱 그릇 쓰는 시대에 누가 비싼 옹기를 사겠냐"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곱씹어 보게 됐어요. 싸고 편한 건 결국 쓰레기가 되는데, 좋은 것에 값을 지불하고 오래 쓰는 게 더 당연해지면 좋겠다고요.


너무 서글프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네요.

그래서 베를린 작업에서도 자연에 유해하지 않은 재료를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코르크가 대표적인데,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채취한 뒤 단계별로 활용해서 버리는 게 없는 시스템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아직 서툴지만 이런 재료를 발견하고 익히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고 재미있어요.

 특히 제주에서 살며 자연 친화적인 재료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눈앞에 보이는 자연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불' 작업도 순수 흙으로만 했고요. 양산 프로젝트를 할 때도 책임감을 갖고, 여러 선택지 중 조금 더 환경 친화적인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착’되는’ 삶을 향하여



밀라노 디자인 위크 이야기하고도 연관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제주의 자연을 본뜬 ‘돌 시리즈’를 가지고 참여하셨잖아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알코바’에 그 작업이 설치된 걸 보니 뭉클했어요. 그곳에서 전시를 하게 된 배경을 좀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알코바는 이전에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구경하러 올 때마다 얼마나 전시를 잘 꾸려오고 있는지 봐와서 알고 있었어요. 근래 몇 년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손꼽히는 플랫폼이라 막연하게 여기서 언젠가 전시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베를린에 온 뒤 ‘우리 밀라노 페어에 나가볼까?’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알코바에 연락했어요. 그쪽에서 저희의 제주 작업을 재미있게 보았는지 함께 하게 되었죠. 막 제주에서 건너왔던 때라 저희는 제주의 이야기로 가득할 때였어요. 당연할 수도 있지만 저희에게 주어진 방을 작은 제주도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가져온 제주 옹기 작업 ‘BUL’ 시리즈와 이때 처음으로 ‘DOL’ 스툴 시리즈를 코르크로 제작해 선보였죠.


Alcova 2023 - 2024

알코바는 깨끗하게 칠해진 하얀 갤러리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를 함께 해온 버려진 공간을 매년 선정해서 전시를 열어요. 이때는 밀라노 시내에 버려진 도축장에서 열렸고요. 밀라노의 오랜 이야기와 맥락이 연결된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는 개념이 정말 매력적이었고, 매년 다양한 배경의 디자이너/작가들이 모여서 높은 수준의 전시 발표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도 참여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제주에서 제주 로컬과 (지지고 볶으며) 실험해 왔던 생생한 디자인 작업들을 이런 국제적인 무대에 세웠을 때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머나먼 나라의 어떤 섬에서 살며 작업해왔던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모르는 이야기일 텐데 어떤 피드백을 받고 어떤 시너지가 날지도 궁금했죠. 

결과는, 정말 다행히도 저희 전시에 와주신 업계 사람들에게 많은 응원과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중에는 드라마를 통해서나 뉴욕에, 코펜하겐에서 제주 해녀 전시를 봤다는 이유 등으로 이미 제주를 아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베를린 디자이너들이라며 신이 나서 취재해 주신 독일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들도 있었고, 들어오자마자 작업이 한국스럽다고, 왠지 속이 시원하다면서 반가워하시는 한국의 브랜드 담당자들도 기억나요. 알고 보니 당시 참여한 70팀 중에 저희를 포함한 2팀 만이 한국에서 왔더라고요. 기억 남는 많은 순간이 있지만 다 이야기하긴 어렵고, 어떻게 보면 저희의 작업이 그때의 알코바 전시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도 두 분께 새로운 영감을 줬을 것 같은데요. 알코바 전시 이후로 작업자로서 가장 깊어진 고민은 무엇인가요.

 그때가 갤러리나 컬렉터블 씬에 대한 존재를 확인하고 비로소 고민하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어요. 저는 산업 디자인 기반으로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두던 사람이다 보니, 이 전시 이전에는 이런 컬렉터블 씬은 나와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유럽에서 지내다 보니 이 업계 자체가, 특히 현재는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이 확인하게 됐어요. 디자이너가 직접 하나씩 가구를 만들어 직접 판매하거나 갤러리를 통해 알리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고 할까요. 재미있고 새로운 분야예요. 우리 정체성에 대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감해요. 많은 고민이 새로 생겼지만, 그중에서도 전시가 주는 이점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전시를 열었을 때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컨택이 이루어지고, 판매나 홍보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등 실무적인 내용을 그때 비로소 경험하게 되었어요. 다른 작업자들은 어떻게 좋은 전시를 내놓는지를 보면서도 이제는 전시 제작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왜 전시해야 하는지, 전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기대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됐어요. 인디밴드의 앨범을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는 머리로만 알고 있다가 경험하고 나니 더 실제로, 더 진심으로 다가오는 경험이에요.


그런 측면에서 최근에 베를린에서 새롭게 발견한 재료는 무엇인가요?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작업도 살짝 들려주세요.

 최근에는 독일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장식 패널을 발견했어요. 독일에서 지내다 보면 집이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레이스 같고 촌스럽기도, 할머니같이 푸근하기도 한 디테일을 찾을 수 있어요. 어느 날 베를린의 건축자재 가게에 갔는데 우리가 독일스럽다고 느낀 그 도안의 장식 패널을 크기별로 팔고 있더라고요. 사실 이렇게 장식적인 패널을 제작한다는 것이 단가도 높고 생산이 어려울 텐데, 굳이 규격화해서 판매하고 있는 게 재미있었어요. 보통은 처마 끝이나 테라스 난간에 사용되는 재료이지만, 저희 생각에는 이미 독일스러운 패널로 무언가를 만들면 뭐든 독일답다고 느껴질 것 같아요. 곧 의자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독일에 오자마자 발견한 건 비어 테이블(beer table)이에요. 비어가튼에 놓이는 접이식 테이블과 벤치 세트인데 Späti 슈패티라고 불리는 동네 구멍가게든, 쿨한 펍이든 어떤 이벤트에 가더라도 항상 이 비어 테이블과 벤치 세트가 놓여있어요. 저희가 베를린에 있어서 그런지, 베를린 어디서든 보이는 가구이기 때문에 애착이 가고,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앉아도 얼마든지 수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특유의 포용하는(welcoming) 감성이 좋아요. 보통 테이블 상판은 노란색, 철제 다리는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어요. 물론 검은색, 회색, 빨간색 버전도 많이 보긴 했지만, 노란색, 초록색 조합이 오리지널로 느껴져요. 비어 테이블로도 오래 생각하며 구상하는 것이 있는데 꼭 완성하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이런 공용 야외 테이블은 적재가 쉽고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들 것 같은데, 독일 사람들은 그걸 꼭 그대로 무거운 나무를 고집해서 쓰고 있는 게 재미있어요. 야외에서 비를 한참 맞아왔기 때문에 페인트가 지워지고 재료가 삭았는데도, 삭지 않는 재료로 바꿀 생각은 않고 비어 테이블에는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거죠. 오랜 관습인 것 같아요.


베를린의 비어 테이블


여러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결국 두 분이 ‘떠나는 존재’로서 얻는 배움이 더 큰 듯하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 여행도 끝나지 않을까요? 어딘가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Ae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개념이 아직 저에게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큰 결심을 한 것처럼 느껴져요. 생각해 보면 이미 뿌리가 서울에 있고 어쩌면 나를 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줄이 엄청 길어서, 사실 매여있지만 줄이 팽팽하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생각도 되네요. 어디에서 여행을 마칠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굳건히 뿌리를 내린다면 그때는 무거운 재료나 기계도 좀 구입하고, 번듯하게 스튜디오 인테리어도 하고, 강아지도 키우고 싶네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고 즐거운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을 것 같아요.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서울, 제주, 베를린을 거치며 장소마다 체류하고 있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느껴요. 아마 작업이 점점 많아지면서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언젠가 한 곳을 정해서 뿌리를 내린다기보다 어느샌가 모르게 기반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희님 말대로 기계도 사고 인테리어도 하고 강아지도 키우고 싶어요.


PROJECT ROOM JOURNAL
얼굴없는 작업자들 2편 끝.



Ae Office / Director 최희, 김명년
Ae Office는 최희와 김명년이 운영하는 산업디자인 스튜디오이다. 의도적으로 낯선 환경을 찾아 스튜디오가 기반할 지역을 옮기는 그들은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재료, 사물의 변형을 탐구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서울의 SWNA와 이광호 스튜디오, 런던의 Industrial Facility에서 산업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쌓은 뒤 2021년에 Ae Office를 설립했다. 서울과 제주를 거쳐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그간 일상에서 수집해온 영감을 작은 사물부터 가구, 제품, 공간 등 만져지는 다양한 매체로 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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