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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 Office 1부

에디터 문희경


Editor’s Note.

지역성에 대한 탐구는 결국 지속 가능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집니다. 선택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새삼스레 이 연결고리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알면 사랑한다’. 관찰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대상의 본질을 마주하게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하면, 즉 알게 되면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가까이 다가가선 안 된다는 겁니다.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떠나야 합니다. 관찰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경계선 밖에서 홀로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 이 외로움을 끝없이 견디기로 매 순간 결심한다는 뜻입니다. 조심스럽게 사랑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주하지 않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Ae의 작업물은 이처럼 부지런한 외사랑의 결과물들입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랑의 기록들이 지니는 사회적 쓸모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 알코바(Alcova) 2023에 등장한 코르크 현무암


지난해 4월에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 2024)의 주제는 '디자인은 어디로 진화하는가(Where Deisign Evolves?)'였다. 전 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축제이자, 가장 유명한 가구 박람회인 이 행사가 던진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인위적 노동의 산물인 제품 디자인에 '진화(Evolution)'라는 표현을 붙인 것만으로도 업계가 짊어진 과제를 잘 보여주기 때문.

'진화'는 세대를 거듭해 생존하는 데 성공한 생명체에게 부여되는 생물학적 용어다. 때문에 '발전'이나 '혁신' 같은 단어가 지닌 기술적 명분 그 이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이제 디자인은 편리함이나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류세(人類世) 시대의 디자이너는 나의 디자인이 왜 필요한 것인지, 혹은 최소한 왜 ‘공해(公害)’가 아닌지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디자인 그 자체가 생물(生物)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얘기이자, 디자이너의 시곗바늘이 훨씬 더 먼 미래를 가리켜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많은 연계 전시 중 가장 미래시제의 디자인 담론을 쏟아내는 ‘알코바(Alcova)’. 폐병원, 도축장 등 해마다 밀라노의 버려진 건축물을 재활용한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전 세계 7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모인 이 전시장엔 한국인 디자이너 듀오 ‘Ae’의 제품도 있었다. ‘돌 시리즈’라고 불리는 석재 테이블과 의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제주의 돌담이 떠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 코르크와 나무를 사용해 만들어진 것. 차갑고 묵직한 돌의 질감을 상상하며 앉은 관람객은 곧바로 유쾌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정말 감쪽같기 때문이다.

재생 재료로 자연의 외형을 모방하기. ‘모방’은 Ae의 작업을, 더 나아가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모두가 오리지널리티를 외치는 시대. Ae는 돋보이지 않음으로써 유일한 디자인을 실천한다. 이 이야기는 그들이 머물렀던 제주도 작업실에서부터 시작된다.



Interviewee: Ae (최희, 김명년 / 이하 ‘최’, ‘김’)
Interviewer: 문희경



숨바꼭질: 우리가 제주로 떠난 이유



팀을 결성하고 처음 작업실을 차린 곳이 제주도여야 했던 이유가 궁금해요. 두 분 다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분들이었잖아요. 

지역을 선택할 때 이방인이 있지만 지역민들이 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곳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제주도는 관광객이 많아 우리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았죠. 그래야 관찰하기에 용이하거든요. 또 제주도는 육지와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책에서도 제주 공예 등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접했고요. 그래서 제주가 도대체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이 컸죠.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한몫했고요.  
사실 처음엔 베를린*을 가자고 얘기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해외 이동이 어려워졌어요. 이미 퇴사를 한 상황이라 한국 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했죠. 서울도 좋은 곳이었지만, 서울보다 더 좋은 곳을 찾자 했을 때 제주도가 떠올랐어요. 제주도의 다양하고 잘 보존된 문화가 매력적이었고, 서울에서 바쁘게 살며 지쳤던 것도 한 이유였죠. 여유로운 공간에서 우리 작업에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여러모로 제주도가 적합했습니다.

*2024년 9월 현재 Ae는 베를린에 머물고 있다.


제주도 작업실은 어느 동네에 있었어요? 좋아했던 풍경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저희는 사계리 뒤에 있는 덕수리에서 살면서 일했어요. 단독주택 1층에 살고 2층을 사무실로 사용했죠. 사무실 테라스에서 보이는 평범한 시골 마을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해 질 녘 걸어가시는 할머니, 퇴근하는 포터 트럭들, 옆집 강아지와의 정 같은 게 너무 서정적이었죠. 산방산이 크게 보이는데, 우리는 그 기운을 받아 잘될 거라 이야기했어요. 해변과 바다도 가까웠고요. 무엇보다 제주에선 사계절이 너무나 뚜렷하게 느껴졌어요. 서울에선 자연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했거든요. 계절마다 색깔이 달라지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 번개, 눈 등이 생생히 다가왔죠. 밤하늘의 별도 쏟아질 듯 아름다웠고요. 명년 님은 어떠셨어요?

 저도 동감해요. 보통 아침부터 저녁까지 생활을 같이하다 보니까 보게 되는 풍경도 거의 비슷했거든요. 특히 기억나는 건 매서운 제주의 겨울 눈보라요. 진짜 얼굴 맞으면 아플 정도였어요.


그렇게 2년을 계셨으니, 제주의 사계절을 두 번 경험한 셈이네요. 그 과정에서 느끼고 감각한 지역성을 풀어낸 게 '불' 시리즈, '고리', 그리고 '돌' 시리즈죠. 작업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불' 시리즈는 제주에 적응하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화산 색깔들, 붉은색과 회색의 땅 색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집집마다 뒤편에 있는 옹기들도 너무 매력적이었고요. 제주 옹기를 직접 그 환경에서 보니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어떻게 만드는지, 누가 만드는지 궁금해졌죠. 그러다 지금은 옹기를 많이 만들지 않고, 물허벅 정도만 만들거나 관광객을 위한 상품으로 개발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주 옹기의 색깔과 질감을 살려 현대 생활에 어울리는 작은 기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구상하게 됐죠.

다만 도예촌의 강창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통 옹기를 복원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장인분들의 자부심과 고집도 있으시고요. 그러다가, 옹기 허벅의 주둥이 부분만 활용해서 촛대로 만들면 어떨까 해서 '불' 시리즈를 시작했죠. 지금은 인센스 꽂이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창원 선생님과 협업해서 40개 정도를 만들었는데, 찌그러지거나 깨져도 너무 멋있더라고요. 제주의 거친 자연을 연상시켜서 의미가 있었죠. 제주 옹기는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산업 디자인 프로세스로는 맞지 않아요. 거의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뜻깊었죠.

제주 전통 옹기의 긴 주둥이를 활용한 오브제 에디션 ‘BUL’.

와우. 1년이나 걸렸다고요? 작업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해지네요.
 설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정말 오래 걸렸죠. 저희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면 장인분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어렵게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으시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웃음). 그래도 강창원 선생님이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셨는데, 바로 만들어 주시진 않았어요. 거의 매주 찾아가 말동무도 하고 친해진 후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죠. 그러니까 6개월이 지나있더라고요. 원래 제주 옹기는 흙을 빚어 1년 동안 건조한 후 구워요. 저희는 시간상 1년을 기다릴 순 없어서, 6개월 정도 건조하고 구웠죠. 그 과정에 또 6개월이 걸려서 결국 1년이 걸렸어요.





그리고 '고리'라는 프로젝트는 벽에 거는 옷걸이, 월 후크를 만든 건데요. 귤 창고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거기 놓인 농기구들이 멋있었거든요. 제주도 특유의 DIY 문화도 흥미로웠고요. 덕수리 근처에 서강건재라는 곳이 있는데, 코스트코만 한 규모의 철물점이에요. 주민 분들이 다 직접 기구를 만들어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월 후크를 철물점에서 파는 듯한 하드웨어 느낌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었죠. 러프한 샌드 캐스트 알루미늄으로 제작했고, 지금도 계속 판매하고 있어요. 오히려 한국보다 베를린에서 인기가 있어서 신기하네요.


제주 귤창고 농기구에서 영감을 얻은 월 후크 ‘GORI’.

그럼 ‘돌 DOL’은 어떤 작업이었나요?
 지금 진행 중인 '돌' 프로젝트는 작년 4월에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작됐어요. 당시 제주도에서 온 지 얼마 안 돼서 제주 작업들을 가지고 갔는데, 새로운 작업도 하고 싶었죠. 제주도의 돌에 대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연히 제주도에서 돌을 가져올 순 없잖아요. 고민 끝에 유럽에 많은 코르크 소재를 활용해 보기로 했죠. 코르크로 제주도 돌을 재현하고 재미있게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코르크로 제주 돌의 형태와 표면을 본떠 만든 스툴(stool)을 처음 제작하게 됐죠. 지금도 그 스툴을 시작으로 돌을 모티브로 한 커피 테이블, 벽에 거는 와인 선반 등 세부 컬렉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주의 돌담에서 영감을 얻은 오브제 가구 에디션 ‘DOL’.

제주의 자연에서 얻은 영감도 크겠지만, 사람들과 대화하며 지역을 이해하게 된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제주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알게 된 제주도의 특성이나 매력, 특이한 점이 있나요?
 우선 제주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 은근히 챙겨주는 면이 있어요. 물론 개인차가 있고 함부로 일반화하긴 어렵지만요. 폐쇄적인 면도 있고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좀 세긴 해요. 하지만 저희가 덕수리에 살 때 주변 어르신들이 많이 챙겨주셨어요. 양배추, 귤 같은 걸 갖다주시면서요. 인상 깊었죠. 이방인들이 많이 오갔기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시는 것 같기도 해요.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대하시는데, 친해지면 엄청나게 잘 챙겨주세요. 그게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또 자연과 가까이 사시다 보니 계절마다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더라고요. 겨울엔 썰매 타기, 고사리 철엔 고사리 따기 같은 거요.

 맞아요. 도시에선 계절이 바뀌어도 업무에 더 바빠지는 것 말곤 특별히 다른 걸 하진 않잖아요. 근데 제주 어르신들은 매달 무얼 해야 할지 다 정해져 있어요. 어디 가서 수영하기, 눈꽃 보러 가기 같은 거요. 고사리 따러 가는 것도 문화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제주도로 이주해 오신 분들도 재밌었어요. 가끔 가게에 가거나 에어컨 설치하러 오신 분들이 슬쩍 "혹시 육지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어보세요. 제주 토박이인 척하다가 몰래 고백하시는 거죠. 육지에서 오신 분들의 커뮤니티도 흥미롭더라고요. 같은 나라 안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모습이었어요.

 또 이주민 분들은 제주에 살기로 스스로 선택하신 분들이라 생각의 배경도 다양하고 자유로우셨어요. 범상치 않은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간도 자유롭게 쓰시는 것 같고요. 토박이분들 역시 지역을 너무 잘 알다 보니 시간을 자유롭게 쓰시더라고요. 그런 점들이 인상 깊었어요.


제주도는 원래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지역마다 토착 문화나 사투리가 조금씩 달랐다고 해요. 아직 다 보지 못한 제주도의 모습들이 더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더 들여다보고 싶은 부분은 뭔가요?
 제주도에서 정말 큰 매력을 느꼈기에, 지금은 베를린에 있지만 언젠가 또 가게 될 것 같아요. 그때 해보고 싶은 건, 저희가 2년 동안 있으면서 이런저런 문화를 굉장히 넓게 파고들었던 것 같거든요. 하지만 깊이 있게, 특정 커뮤니티에 완전히 들어가 보는 경험은 아직 못했어요. 예를 들어 지역 분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일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 접근이 좀 어려웠거든요. 다음에는 마을 커뮤니티나 제주시 차원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저도 다른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가 있었던 덕수리라는 마을이 원래 불미공예(鑄物工藝)라고 솥을 만들던 곳이었대요. 저희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였는데, 이제는 그 공예를 아예 하지 않게 된 거죠.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언젠가 돌아가게 되면 오히려 그런 부분들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요. 희 님 말씀대로 저희가 확인은 했지만 깊게 집중하진 못했던 것들 말이에요. 2년 정도 살면 웬만큼 다 알 줄 알았는데, 오히려 2년 살고 나니 알고 싶은 게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더 관찰하고 싶네요.



떠나지 않으면 무엇을 남기는지 볼 수 없다



그런 아쉬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베를린으로 가셨잖아요. 당시 떠나야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사실 계속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지점이 있었어요. 베를린은 원래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지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컸죠. 그래서 결정했는데요. 재미있는 건, 오히려 베를린에 와서 제주를 더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저희는 이 돌아다니는 프로젝트에서 지난 지역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작업 성향상 이전 지역과 연결되고, 레이어처럼 쌓이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지난 지역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현재 지역을 이전 지역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하고요. 그게 참 흥미로워요.

베를린에 온 건 마음의 결정도 있었지만, 사실 비자 문제도 있어서 좀 조급하게 오게 됐어요. 그런데 베를린에 와서 느낀 건, 희 님 말씀대로 레이어가 쌓이는 느낌이에요. 베를린의 어떤 부분은 제주도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제주도와 서울을 묘하게 섞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요. 뭔가 저희가 도시를 바라볼 때 기준이 하나씩 추가되는 느낌이랄까요. 예전엔 서울에 비교했다면, 이제는 서울과 제주도에 비춰 이곳은 어떤지 생각하게 되죠. 앞으로도 그 기준이 계속 늘어날 것 같아요. 그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두 분께는 작업자이자 디자이너로서 계속 낯선 환경에 나를 두는 것, 그리고 새로운 지역성을 경험하는 게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든 그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에 살면 서울에 영향받고, 기업에 다니면 기업에 영감받는 작업을 하게 되죠. 그래서 ‘지역’과 ‘나’는 떼낼 수 없는 관계라고 봅니다. 또한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고 싶었어요. 디자인 언어가 다양해지면 많은 배움과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한 곳에만 있는 것보다 지역을 옮겨 다니며 새로운 영감을 받는 게 재미있는 실험이 될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새로운 지역에 가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방인의 시선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서울에서 오래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서울만의 특별함을 잊어가게 되더라고요. 반면 제주도에 가보니 색다른 점이 많아 너무 재미있었죠. 하지만 제주도 원주민들은 그게 익숙해 특별함을 못 느끼시더라고요. 우리도 계속 한 곳에 있으면 점점 익숙해져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이 점을 경계하며, 앞으로도 가능한 많은 도시를 가보고 싶어 합니다.


제주도도 베를린도 외지인이 참 많은 지역이죠. 두 지역이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그 양상이 꽤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두 분이 경험한 제주도와 베를린은 얼마나 닮았고, 또 다른가요?

 생각보다 닮은 점이 많아요. 우선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너무 멋있었는데, 베를린은 도시임에도 자연을 많이 보존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에도 계절마다 즐기는 것들이 있어요. 여름엔 호수에서 수영하고, 겨울엔 샬로텐부르크 공원을 산책하는 식이죠. 또 사람들 성향도 좀 비슷한 것 같아요. 베를린 토박이들과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말이 있어요. 여기도 외부인의 유입이 잦다 보니 토착민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듯해요. 독일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베를린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렵다고들 하죠.

저희가 쓰는 공유 작업실에도 20~30명 정도 있는데, 진짜 베를리너는 3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방인들이에요.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죠. 다른 독일 도시 출신들도 많고요. 외부인의 왕래가 잦은 지역일수록 토착민들이 똘똘 뭉치는 건 제주도와 비슷한 것 같아요.

맞아요. 제주도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이방인이 많다는 점, 그리고 자연을 잘 가꾸고 있다는 거예요. 도시 치고는 자연을 보전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재미있는 건, 제주도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서 나오는 문화가 많지만, 베를린은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들이 있어요. 인종이 다양하게 섞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관찰할 점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또 여기는 이주민들이 베를린 문화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 정책과 프로그램도 많아요. 외부인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점이 흥미롭죠.


흥미로운데요. ‘베를린 사람’, ‘베를린 토박이’만의 특징적인 성격이나 기질이 있을까요? 친해지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만한 요소들.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저희가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들은 바로는, 베를린 남자들은 다른 지역 남자들보다 연애를 좀 자유롭게 하고 쿨하고 힙한 걸 추구한다고 해요. 또 이방인들의 잦은 왕래 때문에 정을 잘 주지 않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하지만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매우 개방적인 편이에요. 아랍, 터키, 아시아 등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을 서슴없이 즐기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예술 행사나 전시회도 많이 열리죠. 문화적 다양성이든 성 정체성이든 거리낌 없이 경험해 보고, 자기 생각을 돌아보는 자세가 베를린다운 것 같아요. 그래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유입되는 걸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그게 베를린 사람의 특징이라기보다 베를린이라는 도시 전체의 특징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선 예술가를 보면 "저 사람 돈은 어떻게 벌지, 좀 더 현실적으로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 어린 시선들이 많잖아요. 근데 여기선 그런 고민을 덜 하는 것 같아요. 물론 한국인 입장에선 좀 걱정되기도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활동 그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고, 그걸 인정해 주는 분위기도 있어요. 베를린에는 수익 구조가 불분명한 독립 영화나 퍼포먼스 아티스트들도 많은데, 아무도 그들을 걱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아요. 오히려 멋진 일을 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예술가들도 자부심을 갖고 작업에 몰두하는 편이에요. 그게 참 특징적이라고 봅니다.

맞아요. 베를린 사람 중에 예술 하는 사람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작업하는 이들이 많아요.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 퍼포머, 영화인이에요. 그러다 보니 예술에 대해 매우 많이 열려있고, 그들의 작업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혔죠. 한국처럼 실용성을 따지고 수익성을 고민하기보다는, 적어도 겉으로는 그런 태도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요.

두 분이 잘 안 보이는 이방인으로서 숨어있기 좋은 곳이네요.

아주 그렇죠(웃음)

‘제주도라는 경험을 토대로 베를린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게 참 좋다.’ ‘그 경험의 레이어가 주는 새로운 인사이트들이 있다’고 말씀 주셨는데. 혹시 제주도 말고 새롭게 머물러보고 싶은 한국의 지역이 있나요?
저는 부산이 재밌을 것 같아요. 부산 사람들의 성향 자체가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자신감 넘치는 그들만의 부산 아이덴티티를 사랑하는 게 인상적이거든요. 거기에 전쟁과 피난민 등 다양한 역사가 쌓여 있잖아요. 그 흔적들이 어디까지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결국 저는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들을 재미있게 여겨요. 제주도의 이방인과 토착민 간 충돌도 흥미롭고, 부산 역시 이방인들과 부딪히며 만들어낸 역사와 문화가 많을 것 같아서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저는 최근에 서울, 그중에서도 서촌이나 북촌에 있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경험한 서울은 매우 빠르고 바쁜 곳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가서 서촌의 주거 지역을 둘러봤는데 정말 조용하고 좋더라고요.

예전 회사가 있던 북촌도 그랬죠. 분주한 서울 한복판에서 오히려 가장 한적하고 아이들이 뛰놀 정도로 여유로운 동네예요. 서울의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한 곳이랄까요. 그래서 그런 동네에 살아보는 것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