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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시선] 혼란은 끝났다.

글 노인호



〈기획자의 시선〉
프로젝트룸 대표 기획자 노인호의 지극히 개인적인 업계 관찰 & 인사이트 공유 칼럼.

균형

창작을 업으로 삼으면, 창작자 개인의 창작 욕구와 일로서의 창작 사이에서 언제든지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일’과 ‘창작’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창작자가 자아 표현의 욕망업무적인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어려워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혼란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누구나 언제든지, 그리고 수시로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런 혼란을 급히 잠재우기 위해 “이것은 ‘창작’이고, 저것은 ‘일’이다.”라고 무 자르듯이 딱 잘라 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책이 아니다. 세상에는 완벽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고, 경계를 그어 놓음으로써 마음이 잠시 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이는 오히려 또 다른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나 역시 최근 프로젝트룸에서 다양한 프로젝트와 반복적인 과제를 수행하면서, 이 균형에 대해 재점검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이 '균형'은 곧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스몰 브랜드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브랜드와 기획자(Founder, Owner)의 동시 생존’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무너지면, 결국 두 쪽 다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균열

최근, 동료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프로젝트룸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더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큰 규모의 비즈니스를 상대로도 우리의 작업 방식이 워킹하는지 테스트해 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이 질문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였지만, 사실 우리의 근간을 뒤흔드는 질문이기도 했다. 기획자인 '나'와 브랜드인 ‘프로젝트룸’ 둘 다에게. 이유는 간단하다. 기획자이면서 동시에 창작자인 '나'의 창작욕을 불태우는 질문이었고, 프로젝트룸에게는 더 높고 넓은 곳으로의 도약을 꿈꾸게 하는 질문이었다.

프로젝트룸은 지금까지 스몰 브랜드를 위해 특화된 컨설턴시로 자리 잡아 왔다. 스몰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러한 '스몰 브랜드를 위한 전문가'라는 정체성은 프로젝트룸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와도 같다. 대기업을(큰 규모의 비즈니스)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프로젝트룸이 지금까지 쌓아온 스몰 브랜드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와 맞춤형 전략을 대규모의 비즈니스 요구에 맞춰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이는 곧 프로젝트룸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방향성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근간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중요한 질문이 된다.

동시에 이 질문은 단순히 “큰 비즈니스와 협업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아니라,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창작자 개인의 욕망을 자극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대기업과의 협업은 더 큰 자원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새롭고 더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더 많은 예산, 더 많은 사람,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보다 더 놀랍고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창작자로서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러나, 동시에 큰 프로젝트가 가져오는 제약과 요구가 창작의 자유와 독창성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창작자로서의 자유와 욕망 사이의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렇다. 가벼워 보이지만 복잡한 질문이었다. 이마저도 평소였으면 가볍게 흘려 넘겼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때마침 볼륨업에 대한 고민과 더 나은 작업물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당시에 대화는 두서없이 흘러가 버렸다. 그렇게 대화는 얼추 마무리됐지만, 개운치 못한 뒷맛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스몰브랜드와 매스 브랜드

프로젝트룸은 스몰 브랜드를 대상으로 생애 주기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 고객 규정을 스몰 브랜드로 지정한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니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 그렇다면 스몰 브랜드의 정의와 스몰 브랜드의 반대 개념인 매스 브랜드의 차이는 무엇인가?

스몰 브랜드(Small Brand)
 • 특정 타겟층과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 브랜드 철학, 창업자의 가치관, 제품의 스토리 등을 강조하여 브랜드의 고유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확보한다.
 • 대중 시장에서의 점유율보다는 니치 마켓에서의 입지를 다지는 것을 우선한다.
 • 지속 가능한 성장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매스 브랜드(Mass Brand)
 • 가능한 한 넓은 시장을 대상으로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 많은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위해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
 • 판매와 수익을 최대화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넓혀나가는 데 초점을 둔다.
 • 글로벌 시장 확장 등이 주요 목표가 된다.

이 정도로 구분 지을 수 있겠다. —최근에는 스몰 브랜드와 매스 브랜드 각각의 장점을 고루 섞은 하이브리드 브랜드도 있다. — 이렇듯 스몰 브랜드와 매스 브랜드의 차이는 근본적인 지점에서의 지향성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오직 매출이나 직원의 규모로만 크고 작음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발상이다.

전략의 차이

따라서 스몰 브랜드와 매스 브랜드의 전략은 목표, 자원, 소통 방식, 실행법 등 모든 측면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

1. 매스브랜드는 의사 결정 과정이 길고 복잡한 반면, 스몰 브랜드는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리고, 빠르게 실행한다.
2. 매스 브랜드는 안정적인 자본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사업을 운영하지만, 스몰 브랜드는 예산 부족, 자원 제한, 브랜드 성장의 불확실성 등 여러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다.
3. 매스 브랜드는 주로 브랜드 인지도와 대중적인 메시지를 중점으로 하지만, 스몰 브랜드는 그들의 독특한 스토리와 창업자의 철학이 브랜드의 핵심이다. 즉, 브랜딩 단계에서도 대중의 취향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 개인의 내밀한 곳으로 들어간다.
4. 매스 브랜드는 브랜드의 가이드라인이 매우 체계적이지만, 스몰 브랜드는 오히려 이러한 체계적인 규율이 브랜드의 자유로움을 저해할 수 있다.
5. 매스 브랜드는 대중적인 시장을 목표로 하지만, 스몰 브랜드는 특정한 고객과 밀접하게 접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듯 두 브랜드는 본질적으로 다른 전략과 시스템을 가지고 운영되기 때문에, "프로젝트룸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더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큰 규모의 비즈니스를 상대로도 우리의 작업 방식이 워킹하는지 테스트해 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이 동시에 프로젝트룸의 본질을 뒤흔드는 질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 둘은 거듭 말하지만 전략과 목표, 자원, 소통 방식, 실행법 등 모든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스몰 브랜드를 위해 만들어진 솔루션'을 매스 브랜드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애초에 큰 의미가 없다.

재균형(복무)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렇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동조했다. 프로젝트룸이 더 성장하기 위해 우리는 더 큰 규모의 고객을 수주하고, 더 수준 높은 작업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고객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회고해보니 역시나 개인의 욕망(자아실현의 욕구) 때문이었다. —물론,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 —

기본적으로 우리는 에이전트 집단입니다.
최소한의 윤리 강령은 지키되 맡은 바 최선을 다해서 업무를 수행합니다.
이 바운더리 안에 예술과 자아실현이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이것이 프로젝트룸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자, 우리가 프로젝트룸다움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프로젝트룸의 브랜드 가이드라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는 프로젝트룸이 프로젝트룸 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본질적 가치(브랜드 에센스)이다. 그러니 이 점이 어겨지면 모든 가치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날 나는 이 점을 준수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일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자아실현을 향한 갈망이었다. 즉, 나는 복무하지 못했다. 비단 그날 뿐만이 아니다. 그전에도 수없이 그래왔다. 그럴 때마다 혼란은 다시 시작됐다. 닫혔던 서랍은 다시 열렸다. 그렇게, 끝없는 재균형이 필요했다.

재균형은 단순한 균형의 회복이 아닌, 브랜드의 존재 이유와 개인 욕망 사이에서 본질을 지키는 과정이자 '복무'의 행위이다. 모든 에이전시는(창작 용역 서비스) 이 개인의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는 한 계속 같은 질문의 구렁텅이 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최선인가요?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없나요?'
'복무'는 프로젝트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욕망을 통제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본질적인 균형을 다시 찾아간다. 이것이 ‘재균형’이다.

이런 질문(번뇌)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질문에 일관되게 답하고자 한다. 지금의 규정은 프로젝트룸이 쌓아온 가치의 근간이며, 우리가 스스로 지켜가야 할 원칙이다. 고객의 규모나 예산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규정이라면, 그건 더 이상 프로젝트룸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지금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는 작지만 단단한 스몰 브랜드를 위해 존재한다.

더 큰 무대를 향한 욕망은 창작자로서 자연스러운 갈망이다. 하지만 우리의 본질(Agetn Group)을 잃어서는 안 된다. 프로젝트룸이란 이름 아래,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을 잃지 않는 것. '복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균형을 이루는 길이다.

*남윤민 디렉터와 문희경 에디터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글은 두 분과의 대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노인호
기획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