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에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 2024)의 주제는 '디자인은 어디로 진화하는가(Where Deisign Evolves?)'였다. 전 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축제이자, 가장 유명한 가구 박람회인 이 행사가 던진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인위적 노동의 산물인 제품 디자인에 '진화(Evolution)'라는 표현을 붙인 것만으로도 업계가 짊어진 과제를 잘 보여주기 때문.
‘진화’는 세대를 거듭해 생존하는 데 성공한 생명체에게 부여되는 생물학적 용어다. 때문에 '발전'이나 '혁신' 같은 단어가 지닌 기술적 명분 그 이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이제 디자인은 편리함이나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류세(人類世) 시대의 디자이너는 나의 디자인이 왜 필요한 것인지, 혹은 최소한 왜 ‘공해(公害)’가 아닌지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디자인 그 자체가 생물(生物)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얘기이자, 디자이너의 시곗바늘이 훨씬 더 먼 미래를 가리켜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많은 연계 전시 중 가장 미래시제의 디자인 담론을 쏟아내는 ‘알코바(Alcova)’. 폐병원, 도축장 등 해마다 밀라노의 버려진 건축물을 재활용한 공간에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전 세계 70여 명의 디자이너들이 모인 이 전시장엔 한국인 디자이너 듀오 ‘Ae’의 제품도 있었다. ‘돌 시리즈’라고 불리는 석재 테이블과 의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제주의 돌담이 떠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 코르크와 나무를 사용해 만들어진 것. 차갑고 묵직한 돌의 질감을 상상하며 앉은 관람객은 곧바로 유쾌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정말 감쪽같기 때문이다.
재생 재료로 자연의 외형을 모방하기. ‘모방’은 Ae의 작업을, 더 나아가 이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모두가 오리지널리티를 외치는 시대. Ae는 돋보이지 않음으로써 유일한 디자인을 실천한다. 이 이야기는 그들이 머물렀던 제주도 작업실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