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ROOMBRAND PARTNER

PROJECTSARCHIVE

얼굴없는 작업자들 1편: Passage(파사쥬) 1부
Editor’s Note.

언제부턴가 '퍼스널 브랜딩'은 창작 노동을 하는 모든 이에게 필수 교양 영역이 됐다. 작업자로서 선택받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 수준의 유명세란 과연 무엇일까. 또,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걸까. 업계 사람이 아닌 친구도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동료의 인스타 계정을 볼 때면 복잡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제작 공수'에 값을 매겨 먹고 사는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 만큼이나, 일한 나를 전시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제작 공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하는 데 불필요한 꾸밈노동과 체면치레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좋은 작업자는 오직 작업으로 자신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할까? 프로젝트룸과 얼굴 없는 작업자들의 허심탄회한 일 이야기.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입 디자이너, 그 사이


학부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후 ECAL에서 타입 디자인(Type design)을 공부하셨죠. 그런데 스스로를 ‘타입 디자이너’라고 표현하지는 않으시더군요.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매체와 장르로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진희 님께 어떤 의미를 갖나요.

우선, ’글자’ 자체가 시각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이고요. 그것이 모여서 만들어진 책이나, 잘 만들어진 편집 디자인 작업물도 좋아해요. 이런 것들이 제게는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일관되게 가장 중요하고 재밌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글자는 가장 많은 이야기,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매체잖아요. 그것도 큰 매력이고요.

예를 들면, 편집 디자인은 사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작업이에요. 인쇄물의 내용을 단순한 ‘정보’로서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페이지를 넘기는 과정, 즉 시퀀스(sequence) 자체가 하나의 감상 행위로 느껴지도록 하는 디자이너의 의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콘텐츠의 전개 방식과 그것을 담아내는 형태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읽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죠. 사진과 텍스트를 한 페이지에 붙여서 함께 보여주느냐, 아니면 펼침면 한쪽에 각각 분리해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같은 내용도 완전히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어요.

이런 전개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이 주는 재미가 참 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거였어요. 조금 더 제대로 배워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타입 디자인을 공부하는 데까지 가게 된 거죠.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 주변에 타입 디자인만 집중해서 진지하게 작업하는 동료나 친구들이 많거든요. 그 친구들이 타입 디자인에 대해 가진 ‘애정’의 크기, 열정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제가 그들과 같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타입 디자인은 글자 형태가 작은 단위의 포인트만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나거든요. 좋은 디자인을 할수록, 이런 디테일에 집요하게 몰두할 수 있어야 해요.


표현적인 측면에서 타입 디자인과 레터링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네요.

예를 들어 라틴 타입 디자인은 a부터 z까지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폰트 패밀리, 글자 세트를 만들어요. 반면, 레터링은 특정한 단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에요. Apple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특정한 사과의 느낌을 이미지적으로 글자에 반영하는 거죠. 접근 방식에 있어서 그래픽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봤을 때, 레터링은 똑같이 글자를 다루지만, 그 방식이 드로잉에 가깝기 때문에 접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한 디자이너로서 그래픽 이미지를 다룰 때는 기존의 접근 방식과 다른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가령 BI 디자인에서 로고 타입을 만든다고 할 때, 그것의 생김새가 브랜드의 컨셉을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지를 우선시하는데요. 전체적인 컨셉과 글자가 가진 ‘인상’이 브랜드의 본질과 조화롭게 어울리는지 확인하는 거죠.

로고 타입은 보통 4가지나 5가지 알파벳이 모여서 구축되는 형태가 많은데, 사이즈 베리에이션(size variation)을 하다 보면 크기가 커졌다 줄었다하면서 균형감이 깨지기도 하거든요. 그런 경우까지 고려해서 글자들의 합이 어떤 크기로 가져다 놓더라도 동일하게 읽힐 수 있도록 조절하는 노하우가 필요해요. 이럴 때 타입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배운 지식이 작업의 세밀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레터프레스 블럭 (Letterpress Blocks) '목활자'
핫메탈 타입 (Hot Metal Type) '납활자'
네덜란드에서 스위스까지, 다사다난했던 유학시절


유학 시절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학부 졸업 후 곧바로 ECAL이 있는 스위스로 가신 게 아니라, 네덜란드에 먼저 가셨더라고요. 학풍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스위스와 네덜란드는 차이점이 많을 텐데요.

제가 졸업하기 1~2년 전 무렵부터 한국에 ‘더치 디자인(Dutch Design)’ 붐이 일고 있었거든요. 재밌는 건 더치 디자인이 트렌드가 되기 전, 그러니까 신입생 무렵에 뭣도 모르고 거금 들여서 산 생애 첫 디자인 책이 있는데 그게 더치 디자인에 관한 거였어요. 요즘은 조금 생소한 문화일 텐데, 제가 학교 다닐 땐 캠퍼스에 가끔 전문서를 들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아저씨들이 왔었거든요. 일반 서점에서는 잘 안 파는, 외국에서 들어온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요. ‘너 이런 거 봐야 된다’ 하면서. 그렇게 붙잡혀서 ‘그냥 구경이나 해볼까’하고 뒤적이다가 되게 마음에 드는 엄청 크고 무거운 책을 하나 본 거예요. 학생 입장에서 꽤 비싼 책이었지만 이상하게 그것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사서 책장에 고이 모셔놨죠.

그러다가 4학년이 끝나갈 즈음에 우연히 꺼내서 들여다봤는데, 알고 보니 그게 더치 디자인 모음집이었던 거예요. 당시만 해도 영어 실력이 별로일 때라서, 안에 내용을 읽어보고 산 건 아니었거든요. ‘더치 디자인이 뭔지 몰랐어도 그때 나는 이게 멋있다고 느꼈나 보다’ 생각했죠. 마침 한국에서도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에 대해 다루는 콘텐츠들이 쏟아질 때였어요. 유명 디자인 잡지에 그 책에 실린 작업들이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WT(Werkplaats Typografie)라고 유명한 네덜란드 디자인 학교가 있는데. 거기서 공부했거나, 직접 더치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는 한국 디자이너들도 점점 많아졌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르마 붐(Irma Boom)이나 한스 흐레먼(Hans Gremmen)이 디자인한 굉장히 실험적인 책들을 찾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네덜란드 유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처음엔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으로 네덜란드에 가셨던 거네요.

네. 사실 ‘디자인 유학’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영국에 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워낙 유명하고 커리큘럼이 뛰어난 학교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쪽이 딱히 끌리지 않더라고요. 영미권 유학파들은 이미 너무 많기도 하고요. 일종의 반골 기질이 나왔는지, 졸업 후의 진로가 예측 가능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 경로로는 이미 잘하는 사람 많을 텐데 굳이… 내가 한 숟가락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취향적으로도 미국의 대형 에이전시보다는 네덜란드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든 포스터 한 장이 훨씬 멋지더라고요. 그냥 여기(네덜란드) 너무 멋있다. 내 눈에 멋진 걸 하는 곳에서 배우고 싶다. 그렇게 된 거죠.


그랬는데 왜 곧바로 학교에 들어가지 않으셨어요?

처음에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건너갔거든요. 그런데 시기가 안 맞았어요. 학교에 입학 원서를 넣으려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기다려야 했던 거예요. 너무 막연하니까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친구가 저한테 일단 네덜란드에 있는 스튜디오에 잡 어플라이(Job Apply)를 먼저 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영어도 유학 준비한다고 한국에서 급하게 1~2년 정도 아이엘츠(IELTS) 공부해서 겨우 커트라인 성적을 맞춘 수준이었고, 솔직히 막상 가고 나니까 자신이 없었어요. ‘이게 되겠어’하는 마음으로 그냥 지원서를 여기저기 넣었죠.

그런데 한 회사에서 인터뷰 보자고 메일이 온 거예요. 암스테르담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토닉(Thonik)이었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죠. 온라인으로 1차 면접을 보고, 암스테르담에 가서 대표 디렉터 두 사람(Thomas Widdershoven, Nikki Gonnissen)을 직접 만났어요. 그렇게 인턴십을 시작하게 됐어요. 운이 좋았죠.

Thonik Studio



단순히 운이라고 보기엔 ‘토닉’은 네덜란드에서 나름 손꼽히는 디자인 스튜디오잖아요. 진희 님을 부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때 디렉터들이 제 포트폴리오 중에 마음에 들어 한 게 있었는데요. 학부 시절에 친구들하고 같이 소모임처럼 모여서 했던 독립 출판물 작업이었어요. <술래>라고, 한 2년 정도 정기 간행물로 내던 무가지였는데. 주변에 글 쓰는 친구, 사진 공부하는 친구, 일러스트레이션 그리는 친구 등등이 모여서 만든 잡지였죠. 색도 안 쓰고 그냥 흑백으로만 인쇄하는 책자였거든요. 원래 글 잘 쓰는 친구 둘이서만 하다가 영화제에서 저를 알게 되고, ‘우리도 이제 디자인에 힘 좀 줘보자’ 해서 합류했죠. 근데 저도 그때 막 디자인 공부에 눈뜨던 3~4학년 대학생이라 뭘 그렇게 알았겠어요. 나름 실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말 원하는 대로 해보면서 ‘편집 디자인’의 재미에 눈을 뜨게 해준 첫 작업이었는데요. 토닉 디렉터들이 그렇게 뭔가를 주도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제 태도를 좋게 봐준 것 같아요.


그때는 이미 학부 졸업하고 몇 년간 디자이너로 일을 하던 시점이었을 텐데, 학생 시절의 작업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게 재밌네요. 토닉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인턴이라고 잡무만 맡는 게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10명 남짓 인원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스튜디오여서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셴젠 도시건축 비엔날레(Urbanism/Architecture Bi-City Biennale, Shenzhen)의 ‘전시 아이덴티티 그래픽’, Power Station of Art와 Boijmans van Beuningen 박물관, De Apple 아트센터의 ‘포스터 디자인’, 암스테르담 비블리테카 도서관(Openbare Bibliotheek Amsterdam)의 ‘소책자 디자인’ 프로젝트를 함께 했어요. 프로젝트별로 시니어 디자이너와 팀을 이뤄 진행했는데 Power Station of Art의 전시 포스터는 제가 디자인한 시안이 채택돼서 최종 결과물로 만들어졌죠. 비블리테카는 내부 건물 유리 벽면에 설치되는 그래픽 작업을 통째로 맡아서 진행하기도 했고요.

암스테르담 길거리에 제가 진행한 전시 포스터가 걸린 걸 보니까 진짜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어요. 한국에서 유명한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었고, 디자이너로서 내가 가진 성향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맞는 길인지 불안했거든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 되네. 그럼 좀 더 해볼까? 대중에 공개되는 작업을 만들고, 그게 현실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피드백이 일어나는 이 과정이 너무 즐겁다. 다시 학교를 가는 게 필요할까? 어쩌면 석사가 아니라 일을 더 하는 게 나한테 큰 배움을 주지 않을지 고민하게 됐죠.

Power Station of Art 전시 포스터 - Thonik Studio
De Apple Arts Centre 포스터 - Thonik Studio
JADS 대학 전용 서체

비자 관련 문제는 없었나요? 유학생 비자로 간 게 아니어서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쉽지 않더라고요. 근로자 신분으로 비자를 새로 갱신하려면 회사에서 지원해 줘야 하는 것들이 생겨요. 금전적으로나 문서적으로나 증명할 일이 많아지거든요. 그럼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 저라는 사람에 대해 따져보게 되죠. 그런 일들을 회사 측에서 감내하면서까지 이 친구를 고용하는 게 맞는 방법인지. 더군다나 정식 주니어 디자이너로 입사하게 되면 인턴으로서 서브 역할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책임이 생기잖아요. 클라이언트들과 커뮤니케이션도 직접 해야 하고요. 그때 당시까지만 해도 영어가 편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지만 전문적으로 피드백을 받고 의사결정 과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죠. 객관적으로 저 자신에 대해서 돌아봐도 정규직 전환에 호의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6개월간 같이 일해보면서 확인한 것들이 있다 보니까, 인턴십 기간 종료 뒤에도 프리랜서 형태로 토닉과 몇 개의 작업을 더 이어서 했어요. 현대 시티 아울렛 아이덴티티 리뉴얼 프로젝트가 들어왔는데, 한국어를 모르는 유럽인이 한글 다루기가 어렵잖아요. 조형적으로 어색해지니까요. 그런데 마침 현지인이 회사에 있었던 거죠(웃음). 현/대/시/티/아/울/렛 일곱 글자를 타이포그래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인인 네가 한 번 영문하고도 연결성 있게 만들어줘라. 그래서 맡아서 진행했죠. 그래픽 작업도 보조하고요.


동료로는 괜찮지만, 식구로 받아줄 정도는 아니었군요. 토닉에서 나온 뒤에 에이전시에서도 일하지 않으셨나요?

네, 파브리크(Fabrique)라는 디지털 디자인 에이전시에 단기간 채용 디자이너로 들어가서 잠깐 일했죠. 거기서 일하면서 스스로 받아들였어요. ‘아,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셨어요?

당시에 객관적으로 저를 본다면, 한국에서 이제 갓 디자인 학부를 졸업한, 그냥 디자인 전공생이었어요. 조건만 놓고 보면 그랬죠. 디자이너로서 가진 잠재력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일종의 ‘라이선스’ 같은 게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 스스로도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 공부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강해졌고요.

파브리크에서 만난 디렉터가 해준 말이 있어요. 디자인을 대하는 너의 접근 방식이나 그걸 구현하는 과정을 보면 네가 잘한다는 걸 알겠는데, 그게 좀 더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서 다듬어지면 좋겠다고요. 제 작업 성향이 에이전시보다는 크리에이티브 씬이 더 맞을 것 같다고도 얘기해줬죠.


‘너는 지금 여기 있을 게 아니라 더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무척 젠틀하게 해준 셈이네요.

적응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제가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방향을 이 회사에서 펼치는 데는 한계가 있을 듯하니,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더 맞는 쪽으로 다듬을 수 있는 학교에 가라고 권유해준 거죠. 납득이 됐어요.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학위를 가지고 있어서 손해볼 건 없겠다 싶었죠. 가령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요.


한국으로 치면 ‘제일기획’ 같은 대형 에이전시에서 만난 상사가 건넨 조언이라 더 그랬을 것 같아요.

작은 곳에 있다가 큰 곳에 가보니까 ‘나는 에이전시보다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더 맞는 타입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됐어요. 파브리크 같은 대형 에이전시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도 매우 많고, 수주하는 프로젝트도 웹 기반의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어요. 대기업이나 유명 브랜드, 금융기관이 주 고객이라 굉장히 분업화한 작업 프로세스를 따라 움직이고, 작업물의 성격도 상업적이고 규격화된 것들이 많죠.

그런 특성 덕분에 새롭게 배운 점도 많았어요. 사용자 입장의 UI나 서비스 디자인 과정을 보고 브랜드 디자인 전략을 세우는 방법론이나, 브랜드 매뉴얼 북을 구성하는 양식 같은 것들요. 대신 아무래도 구성원의 자율성은 떨어지죠.

반면에 토닉 같은 디자인 스튜디오는 상주 인원도 적고, 조직이 작으니까 그때그때 필요한 외주 인력과 협업하면서 긴밀하게 움직이는 게 가능해요. 포트폴리오도 대부분 미술관이나 공공기관 같은 예술, 문화 관련 작업이 많아요. 저는 후자처럼 디자이너 개인의 자율성과 역량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환경에서 만족감이 훨씬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학교를 더 찾아봤죠.


TDV 배너 - Fabrique

TDV 포스터 - Fabrique


ECAL에서 배운 것들


ECAL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3년 동안 현지에 있는 미술학교들을 대부분 찾아가 봤지만, 제가 정말 원하는 곳을 찾기 어려웠어요. 타이포그래피 중심의 석사 과정을 다루는 곳이 없었죠. 비용도 만만치 않았어요. 그러다가 암스테르담에서 신진 사진작가를 소개하는 언신 포토페어(Unseen Photo Fair)를 갔다가 처음 알게 된 거예요. ECAL에서 사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만든 전시 부스가 있었거든요. 작품들 자체만 놓고 보면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공통으로 느껴지는 어떤 ‘느낌’이 있었어요. 각자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명확히 보이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무척 명료했죠. 그게 참 마음에 들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다니는 학교는 어떤 곳인가 싶어서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는데 타입 디자인 석사(Master Type Design) 과정이 있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 해가 해당 학과가 생긴 지 두 번째 해더라고요. 원래 ‘아트 디렉션(Art Direction)’이라는 전공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었는데, 사진(Master Photography)과 타입 디자인으로 나뉘면서 각 전공의 성격을 확실하게 살렸더라고요. 학비도 부담이 훨씬 적었고요. 그러다가 앞서 공부하신 한국인 졸업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연락처를 찾아 메일을 보내봤어요. 타입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양희재 님이었죠. 감사하게도 답변을 주셨고 그걸 참고삼아 준비해서 ECAL 딱 한 곳만 원서를 넣었죠.


배수의 진을 치셨군요.

맞아요. 마지막 옵션이었어요. 비자 연장 기간도 다 끝나서 유학생 비자가 아니면 한국에 돌아가야 했거든요. ‘혹시 합격할지도 모르니까 생활비를 미리 벌어두자’ 싶어서 몇 개월간 다른 직종으로도 바짝 일했죠. 국내 대기업 무역회사의 네덜란드 지사였는데, 디자인하고 무관한 사무직 업무였어요. 덕분에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감각도 익힐 수 있었죠. 네덜란드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한국분들도 많이 만났고요. 그러는 와중에 기적적으로 입학처에서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참 열정이 넘쳤던 것 같네요.


최종 합격 통보까지 얼마나 기다리신 거예요?

12월에 원서를 내서 5월에 면접을 봤고 그해 여름에 합격 통보를 받았으니 6개월 정도가 걸린 거죠. 사실은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유학원의 도움을 체계적으로 받아서 학교가 원하는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거든요. 저는 현실적으로 그런 도움을 받을 여건도 안 됐죠. 혼자 준비하다 보니 불안했지만, 다행히 학교에서는 제가 여러 회사와 인턴이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쌓은 작업물을 좋게 봐주셨어요.


ECAL의 교육과정은 어땠나요?

에칼은 학교 자체가 단순히 아티스틱한 요소보다는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실력을 만드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커리큘럼 수준이 높고요. 각자의 개성이나 예술적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도 좋지만, 완성도 있는 작업물을 만들 줄 아는 능력이 더 우선시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유럽의 예술 학교’하면 상상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와는 좀 다르군요.

석사 과정이지만 전반적으로 좀 타이트해요. 학기마다 워크숍이 있고, 매년 각자 완성해야 하는 개인 프로젝트가 4개씩 있어요. 학년말 평가(Evaluation)가 있는데, 결과물이 학과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이 들면 다음 학년으로 못 올라가요. 알게 모르게 친구들끼리도 경쟁 구조가 생기죠.


파사쥬(Passage)라는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패시지(Passage), 그러니까 '단락'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저는 텍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 의미를 담는 것도 좋았죠. 영어로 읽으면 '패시지'지만, 저는 일부러 파사‘쥬’라고 표기해요. 유럽의 쇼핑몰에 있는 실내 통로, 양쪽으로 상점들이 늘어선 아케이드를 보면 그 공간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좋았거든요. 야외에서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새로운 공간에 온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거창한 걸 좋아하지 않아서, 이름 자체가 주는 힘이 크지 않았으면 했어요. 파사쥬는 흔한 이름이에요. 프랑스에선 특히 흔하죠. 누구나 알 법한, 평범한 느낌이에요. 일종의 ‘아지트’ 같은 거요. 제가 좋아하는 스위스의 스튜디오는 이름이 '놈(Norm)'이에요. 자기들이 뭐로 불리는지는 중요치 않아 보이죠. 대신 자기가 한 작업을 잘 만들고 싶어 해요. 이름보단 작업으로 기억되는 게 중요해 보였어요. 파사쥬도 그런 의미예요. 걷다 보면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이자 통로 같은 거죠. 딱히 대단한 의미는 없어요.


2부 이어서 보기


Copyright © 2025 - V3.2

PROJECT ROOM IS PART OF ROUND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