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님과 만나면 ‘소속’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갈지(之)자를 그리며 나아가는 잎새 님의 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커리어 대부분을 ‘회사원’으로 사셨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삶의 형태가 프리워커로 살아가는 작업자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나 남편인 선호 님과 사업을 경험한 직후부터는 더욱더 그렇고요. 저의 직감이 맞는지는 대화를 나눠보면 알 것 같습니다(웃음). 일단 잎새 님의 커리어 궤적부터 거슬러 가 볼까요.
저의 첫 직장은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선박회사였습니다. 사무직으로 일했죠. 그 뒤엔 두바이로 날아가서 지상직으로 공항에서 근무했습니다. 잠시 서울로 돌아왔다가, 제주도로 내려가서 제약회사에서 사업 개발 일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남편과 함께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고, 코로나가 터졌고, 2022년에 운영하던 볼링장(볼하우스)을 정리한 뒤 1년 정도 백수가 됐어요. 그러다 얼마 전 다시 취직해 지금은 헬스케어 기업에서 사업 기획 쪽 일을 하고 있어요.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사연이 한 무더기일 것 같은 커리어 패스네요. 경력이 쌓이는 동안 이동한 거리만 합산해도 엄청나겠는데요?
의도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죠. 이직할 때마다 사는 곳도 함께 옮겨야 했어요. 한국 안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수준이 아니라 나라를 옮기는 식이었죠. 그런데 단 한 번도 이직 준비를 미리 해놓고 옮긴 적이 없어요. 다 불태우고 번아웃이 오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가 되는 상황의 반복이었죠(웃음). 그래서 항상 이직과 이직 사이에 텀이 있었어요.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혹은 그 이상 소속이 없는 시기를 보내다가 다음 회사로 이어지곤 했죠.
그래서 처음 저와 ‘소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인터뷰 제안을 주셨을 때 반가웠어요. 저한테도 무척 의미가 있는 주제였거든요. 특히 볼하우스*를 정리하고 나서 제가 9개월 정도 갭이어를 가졌는데, 그때 했던 생각이 있어요. ‘아, 진짜 이제는 랩업(wrap-up)을 한번 해야겠다.’ 내 삶에서 일이라는 게 의미하는 게 뭔지, 나의 ‘업계’란 무엇인지 제가 느껴야 할 어떤 ‘소속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싶었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거예요 이런 삶이.
의도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죠. 이직할 때마다 사는 곳도 함께 옮겨야 했어요. 한국 안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수준이 아니라 나라를 옮기는 식이었죠. 그런데 단 한 번도 이직 준비를 미리 해놓고 옮긴 적이 없어요. 다 불태우고 번아웃이 오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가 되는 상황의 반복이었죠(웃음). 그래서 항상 이직과 이직 사이에 텀이 있었어요.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혹은 그 이상 소속이 없는 시기를 보내다가 다음 회사로 이어지곤 했죠.
그래서 처음 저와 ‘소속’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인터뷰 제안을 주셨을 때 반가웠어요. 저한테도 무척 의미가 있는 주제였거든요. 특히 볼하우스*를 정리하고 나서 제가 9개월 정도 갭이어를 가졌는데, 그때 했던 생각이 있어요. ‘아, 진짜 이제는 랩업(wrap-up)을 한번 해야겠다.’ 내 삶에서 일이라는 게 의미하는 게 뭔지, 나의 ‘업계’란 무엇인지 제가 느껴야 할 어떤 ‘소속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싶었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거예요 이런 삶이.
*유잎새씨와 그의 남편 이선호씨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함께 청담동 소재의 볼링장 ‘볼하우스’를 운영했다.
어떤 삶이요?
제가 이제 30대 후반이 되었는데, 돌이켜보니 늘 단거리 선수처럼 딱 그만큼의 앞만 보고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리어뿐만 아니라 인생도 장기적으로 보지 못하고 단거리 스퍼트만 내며 살아왔다는 느낌.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일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럴 수도 없을뿐더러 그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소속’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느끼신 거군요. 왜 하필 그 시점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좀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제가 사업을 정리하기 전에 신청해 둔 커뮤니티 모임이 하나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걸 참여할 무렵에 제가 이미 사업장을 정리해 버려서 애매한 상태가 된 거예요. 회사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업가도 아닌. 그런데 거긴 비즈니스 모임이라 다들 소속이 명확한 분들이 오는 곳이었거든요. 신청한 걸 무를 수도 없어서 일단 갔는데, 제가 저를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다들 자신의 소속으로 짤막하게 스스로를 소개하는데, 저는 ‘백수’라고 말할 수가 없으니까 구구절절 혼자 말이 길어진 거죠. 그게 너무 싫어서 남편인 선호한테 토로하기도 했어요. 그 경험을 이후에도 몇 번 경험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지금의 내 상태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러다가 찾게 된 게 ‘갭이어’라는 명칭이었어요.
‘소속’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느끼신 거군요. 왜 하필 그 시점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좀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제가 사업을 정리하기 전에 신청해 둔 커뮤니티 모임이 하나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걸 참여할 무렵에 제가 이미 사업장을 정리해 버려서 애매한 상태가 된 거예요. 회사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업가도 아닌. 그런데 거긴 비즈니스 모임이라 다들 소속이 명확한 분들이 오는 곳이었거든요. 신청한 걸 무를 수도 없어서 일단 갔는데, 제가 저를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다들 자신의 소속으로 짤막하게 스스로를 소개하는데, 저는 ‘백수’라고 말할 수가 없으니까 구구절절 혼자 말이 길어진 거죠. 그게 너무 싫어서 남편인 선호한테 토로하기도 했어요. 그 경험을 이후에도 몇 번 경험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지금의 내 상태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러다가 찾게 된 게 ‘갭이어’라는 명칭이었어요.
남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일종의 이름표를 찾아낸 셈이네요.
그렇죠. 소속이 없어도 내가 나를 위한 어떤 소속을 만들어줘야겠다. 이게 나 자신에겐 필요하지 않아도 나와 만나는 외부의 저들에게는 필요한 것일 수 있겠다. 그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아, 나는 지금 갭이어를 보내고 있는 거구나.’라고 찾게 된 거죠. 누군가가 ‘무슨 일 하세요?’ 물었을 때 ‘지금 저는 갭이어를 가지고 있고요’ 대답하면 상대방도 의아해하지 않고 이해하더라고요.
실은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어요. ‘갭이어’라는 어떤 행위 안에 내가 소속돼 있다고 느끼는 거구나, 사람들은. 대체 그 구분이 뭐길래. 사실 그냥 프리랜서라고 답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프리랜서라고 답하면 그 뒤엔 ‘업종’이 뭐냐는 질문이 더 따라오거든요. 구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 불안함. 어떤 애매한 상태의 그레이 존(grey zone)을 나도, 사람들도 잘 견디지 못하는구나. 소속이 없는 노동자, 작업자의 정체성을 이해시키는 일은 참 어렵다.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는 실제로 그 기간이 ‘갭이어’가 됐어요. 얼마 뒤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 다시 취직했으니까요(웃음).
그렇죠. 소속이 없어도 내가 나를 위한 어떤 소속을 만들어줘야겠다. 이게 나 자신에겐 필요하지 않아도 나와 만나는 외부의 저들에게는 필요한 것일 수 있겠다. 그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아, 나는 지금 갭이어를 보내고 있는 거구나.’라고 찾게 된 거죠. 누군가가 ‘무슨 일 하세요?’ 물었을 때 ‘지금 저는 갭이어를 가지고 있고요’ 대답하면 상대방도 의아해하지 않고 이해하더라고요.
실은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어요. ‘갭이어’라는 어떤 행위 안에 내가 소속돼 있다고 느끼는 거구나, 사람들은. 대체 그 구분이 뭐길래. 사실 그냥 프리랜서라고 답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프리랜서라고 답하면 그 뒤엔 ‘업종’이 뭐냐는 질문이 더 따라오거든요. 구분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 불안함. 어떤 애매한 상태의 그레이 존(grey zone)을 나도, 사람들도 잘 견디지 못하는구나. 소속이 없는 노동자, 작업자의 정체성을 이해시키는 일은 참 어렵다.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는 실제로 그 기간이 ‘갭이어’가 됐어요. 얼마 뒤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 다시 취직했으니까요(웃음).
그 시기가 주는 막연함과 불안함도 있었겠지만, 제가 느낄 땐 그 ‘갭이어’를 계기로 잎새님이 좀 편해지신 것 같아 보였어요. 사업을 하기 전과 후, 갭이어를 갖기 전과 후 생긴 태도나 생각의 변화들이 궁금해요.
저한테는 오랫동안, 그냥 ‘일’ 그 자체가 아주 큰 화두였거든요. 일이 저에겐 너무 중요한 주제이자,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갭이어를 보내면서 문득 깨달은 거죠. 삶이라는 건, 그걸 살아가는 ‘나’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을 수 없다는걸.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나보다 중요한 건 없는 건데, 돌이켜보니 저는 저 자신보다 일이 훨씬 큰 상황이 너무 많았던 거에요. 그게 좀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나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재정립해 보게 됐어요. 내 삶을 구성하고 있고, 구성했으면 하는 것들을. 한 네 가지 정도로 정리가 되더라고요.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글’이 있고, 남편인 선호와의 관계가 있고,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일이 있는데요.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는 이 4가지의 요소가 일 하나에 잡아먹히지 않고 균형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인생을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로 보게 된 거예요.
일은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테고, 어떤 일을 하든지 나는 작업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어갈 텐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소진하면서 사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늘 항상 회사가 곧 저인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소속된 회사야말로 제가 처음으로 ‘회사’라는 옷을 그렇게까지 껴입지 않은 첫 번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무슨 느낌인지 알아요. 그 안정감을 딱 찾았을 때 오는 평화로움이 있지 않나요.
네, 다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게 회사 옷을 덜 입었다고 해서 일을 설렁설렁한다는 건 전혀 아니고요(웃음). 삶과 일이 양립 가능해진 거죠. 그러면서 작업에 쓸 수 있는 에너지도 조금씩 더 남겨둘 수 있게 됐고요.
누구나 그렇게 한 번씩 시야가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경험하는 방식도 다양하고요. 잎새 님의 경우는 볼하우스를 운영해 본 경험이 진짜 큰 전환점이 되신 것 같네요.
맞아요. 우연히 사업을 시작해 본 경험이 저한테는 정말 큰 웨이크업 콜(wake up call)이 됐어요. 그전까지 저는 말 그대로 뼛속까지 직장인인 삶을 살았거든요. 게다가 몸담았던 업계들도 대부분 정장 입고 출근해야 하는 엄격한 곳들이었어요. ‘나인 투 식스’외의 삶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관심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자영업자가 되면서 제가 일상에서 누리던 모든 것들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내가 알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고, 일의 영역이 이토록 넓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무엇보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제가 직전까지 회사에 다니면서 배우고 익혔던 일의 방식이 이 필드(사업)에선 하나도 적용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어떤 점에서 그랬나요?
직전 회사가 제약회사였고, 거기서 PM 일을 하면서 스스로 소질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프로젝트 매니징을 잘 한다면 문제 해결 역량이 있다는 뜻이고, 어쩌면 나의 이런 장점이 사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사업은 회사에서처럼 모든 걸 서류화하거나 딱딱 정의하는 식으로 일이 굴러가지 않았거든요. 주간 회의니, 트래킹이니 하는 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업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만 그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는 세계였거든요. 특히나 저희는 아이템이 스포츠 쪽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죠.
내가 아주 오랫동안 써온 언어가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 정말 막막했겠는데요.
네. 하지만 그것도 여전히 ‘일’인 거예요. 제가 보지 못했고, 해보지 않았던 일인 거죠. 덕분에 그동안 내가 ‘일’이라고 배우고, 잘한다고 믿었던 능력들이 얼마나 좁은 영역의 것인지 깨달았어요. 누군가 내려 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할 일을 스스로 발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벌린 일이 사업체의 생존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 이게 참 막막하더라고요. 그렇게 깨지고 배우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저 스스로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정답을 찾듯이 일하고, 또 당연히 모든 일에는 정답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굉장히 스트릭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꼭 ‘그런 식’으로 일해야만 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라는 걸 배운 것 같아요. 덕분에 많이 편해졌죠. 요즘은 일하면서 아프지 않거든요. 늘 신경을 너무 써서 몸이 절절 아팠는데(웃음).
흔히 메타인지라고 하잖아요. 스스로를 버드 뷰(bird view)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겸손이 주는 축복은 역시, 여유로움이죠(웃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진실에서 오는 안도감이요.
진짜 맞아요.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요. 정말로요. 저랑 선호는 사업을 접고 난 뒤에 길 가다가 구멍가게만 보면 그렇게 감동을 받아요. ‘세상에 저걸 몇십 년째 한자리에서 열고 있다니!’ 그것도 이 불경기에 말이에요. 정말이지 그 자체로 너무나 위대한 일이거든요. 망하지 않고 그 가게가 살아있다는 게요. 매일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과 인내, 희로애락이 숨어 있겠어요.
저희가 볼링장을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하필이면 코로나가 터져서 정말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실내 체육시설이니까 정부 지침에 따라서 40일 동안 문을 닫기도 했어요. 규모가 큰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몇천만 원 단위의 월세를 내야 하는데 한 달 넘게 장사를 못한다는 건 치명적이잖아요. 가게가 이태원 쪽에 있었다 보니 실제로 문을 닫는 술집이나 식당들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 오래된 가게를 보면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어요. 특히 작은 가게들이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의 시작과 끝을 전부 ‘책임진다’는 건 저런 걸 말하는 거구나. 회사에서 일 좀 한다고 기고만장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되죠.
그렇게 많은 배움을 준 경험이었지만, 막상 사업을 정리한 뒤엔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특히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이력서를 쓸 때요. 나라는 사람을 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심지어 저는 이직과 함께 나라도 옮겨 다녔잖아요. 사실 해외에서 일하다 들어온 경력은 한국 회사들이 잘 쳐주지 않거든요. 몇 년을 일했지만 제가 일한 건 그냥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의 ‘리셋’을 많이 경험했어요. 일한 경력은 계속 늘어나는데, 업계가 계속 바뀌니까 저는 여전히 신입의 상태인 거예요. 특히나 20대엔 열심히 일한 경력이 다음 회사에선 0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보니 저는 항상 저의 씬(scene)을 너무 만나고 싶었어요. 회사에 다니다가 사업을 하고, 그만두고, 갭이어를 보낸 시간도 그런 저의 욕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꽤나 많은 씬을 기웃거린 셈이죠(웃음).
그런데 제가 얼마 전 이력서를 새로 쓰면서 깨닫게 된 건, 제가 딱히 소속되고 싶은 씬이 없다는 거였어요. 어떤 씬에 소속된다는 건 그 안에 형성된 하나의 커뮤니티에 저도 동참한다는 건데, 전 그게 회사의 자아를 입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나라는 사람으로 있는 게 더 중요하지, 내가 어디 소속이라는 것이 나를 대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저는 되도록 준거집단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사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게, 그곳의 이점만 얻을 순 없잖아요. 소속되는 순간부터 어떤 의무가 생기니까요. 그런데 저는 제 가족한테도 그런 걸 부여하거나, 스스로 짊어지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런 걸 최대한 덜어내며 살고 싶은 사람 같아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씬이 없는 사람인데, 씬이 없는 채로도 일을 계속할 수는 있는 것 같다. 그게 저라는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공감되는 얘기에요. 준거집단이 생기는 순간 그곳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게 되잖아요. 그게 주는 피로감이 있죠. 저도 저의 ‘업계’란 게 따로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 느슨함이 일하는 나를 더 편하게 해주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소속을 흐릴 때 좋은 점 중 하나는 ‘동료’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는 것 같아요. 어떤 업계에 있건, 어떤 직종에 있건 그냥 나랑 같이 일하면 다 똑같은 동료인 거죠. 잎새님도 비슷하실 것 같은데요. 씬과 상관없이 ‘저 사람은 나랑 같은 과야’라고 느끼는 작업자들이 있나요?진짜 맞아요.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어요. 정말로요. 저랑 선호는 사업을 접고 난 뒤에 길 가다가 구멍가게만 보면 그렇게 감동을 받아요. ‘세상에 저걸 몇십 년째 한자리에서 열고 있다니!’ 그것도 이 불경기에 말이에요. 정말이지 그 자체로 너무나 위대한 일이거든요. 망하지 않고 그 가게가 살아있다는 게요. 매일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과 인내, 희로애락이 숨어 있겠어요.
저희가 볼링장을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하필이면 코로나가 터져서 정말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실내 체육시설이니까 정부 지침에 따라서 40일 동안 문을 닫기도 했어요. 규모가 큰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몇천만 원 단위의 월세를 내야 하는데 한 달 넘게 장사를 못한다는 건 치명적이잖아요. 가게가 이태원 쪽에 있었다 보니 실제로 문을 닫는 술집이나 식당들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난 뒤 오래된 가게를 보면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어요. 특히 작은 가게들이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의 시작과 끝을 전부 ‘책임진다’는 건 저런 걸 말하는 거구나. 회사에서 일 좀 한다고 기고만장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되죠.
그렇게 많은 배움을 준 경험이었지만, 막상 사업을 정리한 뒤엔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특히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이력서를 쓸 때요. 나라는 사람을 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심지어 저는 이직과 함께 나라도 옮겨 다녔잖아요. 사실 해외에서 일하다 들어온 경력은 한국 회사들이 잘 쳐주지 않거든요. 몇 년을 일했지만 제가 일한 건 그냥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의 ‘리셋’을 많이 경험했어요. 일한 경력은 계속 늘어나는데, 업계가 계속 바뀌니까 저는 여전히 신입의 상태인 거예요. 특히나 20대엔 열심히 일한 경력이 다음 회사에선 0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보니 저는 항상 저의 씬(scene)을 너무 만나고 싶었어요. 회사에 다니다가 사업을 하고, 그만두고, 갭이어를 보낸 시간도 그런 저의 욕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꽤나 많은 씬을 기웃거린 셈이죠(웃음).
그런데 제가 얼마 전 이력서를 새로 쓰면서 깨닫게 된 건, 제가 딱히 소속되고 싶은 씬이 없다는 거였어요. 어떤 씬에 소속된다는 건 그 안에 형성된 하나의 커뮤니티에 저도 동참한다는 건데, 전 그게 회사의 자아를 입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나라는 사람으로 있는 게 더 중요하지, 내가 어디 소속이라는 것이 나를 대변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저는 되도록 준거집단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사실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게, 그곳의 이점만 얻을 순 없잖아요. 소속되는 순간부터 어떤 의무가 생기니까요. 그런데 저는 제 가족한테도 그런 걸 부여하거나, 스스로 짊어지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런 걸 최대한 덜어내며 살고 싶은 사람 같아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씬이 없는 사람인데, 씬이 없는 채로도 일을 계속할 수는 있는 것 같다. 그게 저라는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저는 아무래도 글을 쓰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제가 전문 에디터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10년 넘게 글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글 쓰는 분들 보면 어떤 동질감을 느껴요. 한때는 이게 민망해서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던 시절도 있었어요. ‘나는 왜 계속 글을 쓰지?’ ‘내가 글을 쓸 자격이 있나?’ ‘저 사람들과 내가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그러다가 지금은 그냥,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나는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글이라는 건 굉장히 다양한 형태일 수 있다. 읽히기 위한 글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에세이이거나 소설일 수도 있고. 누가 읽어주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를 쓰는 과정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을 누려도 좋다고 제가 저 자신한테 허락해 줬어요. 글 쓰는 게 나의 ‘작업’이라고 정의한 후에 회사를 다니는 게 굉장히 재밌는 경험이었는데요. 글이란 게 결국엔 소재가 있어야 하고, 그건 다 제 일상에서 오는 거잖아요. 일상이 소중해지는 거죠. 여기서부턴 일도 그냥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작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생산 활동이 되는 거예요. 일을 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작업을 할 수 있고, 일을 하다가도 나는 해야 할 작업이 있기 때문에 전처럼 거기에 너무 매달리지 않게 되더라고요. 작업자로서 나의 자아를 스스로 용인하면서 아까 말씀드렸던 네 가지 삶의 균형이 조금씩 맞춰져 가고 있는 듯해요.
제가 잎새님과 동질감을 느꼈던 이유를 찾았네요(웃음). 남들이 볼 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일수록 작은 것도 이유가 중요해지죠. 프로페셔널이 되어야만 스스로에게 ‘작업자’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머쓱함, 그 부끄러운 마음을 잘 알아요. 그렇게 선언하기까지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한데, 나 자신에게 작업자로서 정체성을 허락해 줬다는 말이 참 기쁘게 들리네요. 요즘 작업자로서 잎새님께 중요한 화두는 어떤 것인가요?
저만의 영점(zero point)을 찾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갭이어 갖는 동안 책을 읽고 명상을 한 게 도움이 많이 됐는데.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가운데 멈춰있는 시계추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실은 가장 격렬한 동적 움직임을 하고 있는 상태다. 왼쪽과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도 쏠리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죠. 어느 한 쪽으로 추가 쏠리면 그걸 놓는 순간 반드시 반대편으로 쏠리잖아요. 극과 극이 반복되는 거에요. 그 구절을 읽으면서 균형이라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나는 지금 어디로, 얼만큼 쏠려있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됐어요.
특히 제가 그동안 써온 글들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제 삶은 사실 글에 엄청 많은 빚을 지고 있거든요. 지금의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결국 글을 썼기 때문이에요. 오늘 저랑 만난 희경 님도 제가 뭔가를 썼기 때문에 저를 아시게 됐잖아요.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관계들, 저를 조금 더 앞으로 밀어줬던 어떤 기회들은 대부분 제가 쓴 글로부터 이뤄진 게 많았어요. 글이 저를 키워준 거죠.
그런데 그 글들이 정말 많은 극과 극을 오가면서 가운데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대, 20대 때 쓴 글 보면 정말 비관적인 말과 자기 비하하는 문장들이 많거든요. 돌이켜보면 정말 거칠고 극으로 치달아 있던 글에서 자기 비하를 덜어내는 것부터가 제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글을 써온 시간이 곧 저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글과 함께 나도 영점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그래서 앞으로도 작업을 통해 가장 출렁임이 없는 상태를 지향하고 싶어요.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극단에도 속하지 않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요.
말씀을 듣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요. 잎새님이 22년도에 브런치에 쓰셨던 글에서 제가 무릎을 쳤던 문단인데요.
“올해로 37살이 된 나는 가능성의 갈피가 무한히 뻗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7살 때의 나는 두바이에 있었고, 공항에서의 쳇바퀴 생활에 지쳐 차마 나를 믿지 못했다. 17살 때는 몸이 절절 아파 하루 학교에 가면 3일을 끙끙 앓았다. 휴학과 자퇴를 거치며 고등학생도 20대도 되지 못한 채 인생이 끝날 줄 알았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를 완전히 믿기 시작했고, 내가 믿어준 만큼 시도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고 다시 믿는다. 57살의 나는 지금을 어떻게 회상할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을지 생각하면 조금 가슴이 뛴다. 아끼고 아껴둔 한마디를 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가고 싶다.”그리고 그 글은 이렇게 끝나요.
"잎새야,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마지막 문장을 읽는데 마치 제게 하는 이야기 같아서 뜨끔했어요. 동시에 궁금했습니다. 이 자기 확신이 완성된 순간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그런데 저는 방금 읽어주시는 걸 들으면서 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2년 전의 글이니까요. 나를 완전히 믿기 시작했다는 문장은 거짓이다. 저기서 ‘완전히’는 빼야 한다. 무언가 다른 부사를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열심히 믿기는 하는 것 같은데, 과연 죽기 전까지 나를 ‘완전히’ 의심 없이 믿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의 작업도, 저의 삶도 철저한 자기 의심으로부터 출발했으니까요.
다만 나를 믿는다는 느낌은 더 이상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내가 얼마나 효용감 있는 인간인지, 얼마나 열심히 살고 매력적인 사람인지 증명해 내야 할 것 같은 어떤 불안이 있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대다수의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없거든요. 저 자신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기적처럼 나를 이해해 주는 몇몇의 타인을 만날 수 있는 거라고요. 삶을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만족감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잎새님이 그려온 일의 궤적은 결국 ‘나’를 이해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영점을 찾기 위해 나아가야 할 여정은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도 수많은 글이 쓰이고 고쳐지겠지만. 지금의 유잎새를 있게 한 자기 화해의 과정을, 그런 미래가 있다는 걸 방황하던 이십 대의 잎새에게 들려준다면 어떤 말을 할까요?
잎새야,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웃음). 이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요. 또 나와 내가 적당히 화해하며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을 거 같아요. ‘더 열심히, 더 책임감 있게,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가 알아서’ 모든 걸 해내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걸 제대로 해내기나 했으면 모르겠는데, 늘 용량이 넘쳐서 허우적대는 걸 반복했거든요. 그러니 적당히 느슨하게 사세요, 어린 잎새씨. 이 말을 이십 대의 제가 들었으면 좋겠네요. 근데 아마 안 들을 거예요. 남의 말 잘 안 듣거든요(웃음).
마지막으로, 나의 영점을 찾는 것 외에 작업자로서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작업의 형태가 있는지 궁금해요.
최근에 우연히 html을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검은색 코딩 화면에 글을 쓰는 작업이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형식이 달라지면 쓰고 싶은 글의 내용도 달라져서 신기하기도 하고요. 올해는 조촐한 웹페이지를 만들어서 거기에 소소한 이야기를 채워 넣어 보고 싶어요. 커피를 마시며 한 생각이나, 최근에 먹은 야채 사진이나, 읽은 책 같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들이요. 제 손으로 얼기설기 만든 핸드메이드 웹페이지를 갖는 게 목표에요.
얼굴없는 작업자들 3편 끝.
유잎새/읽고 쓰고 일하는 사람
읽고 쓰고 일하는 사람. 적절한 노동과 하루 2잔의 커피, 1권의 책이면 만사형통으로 여긴다.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매년 실패했다. 의료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을 한다.
Brunch
유잎새/읽고 쓰고 일하는 사람
읽고 쓰고 일하는 사람. 적절한 노동과 하루 2잔의 커피, 1권의 책이면 만사형통으로 여긴다.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매년 실패했다. 의료 스타트업에서 사업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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