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언어는 패션이라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사업(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고객 가치나 공동체라는 거창한 단어로 포장해도 이윤 추구, 이익의 극대화라는 영리 기업(營利企業)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제품과 브랜드가 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세상에 쓰레기를 만들고 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개개인의 철저히 이기적인 욕망이 모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매 초, 매 분, 매 시간 수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때때로 그렇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냥 차라리 욕망에 솔직해져 보자. 브랜딩, 브랜드 아이덴티티라는 두루뭉술하고 그럴듯한 언어 아래 숨겨 놓은 우리의 진짜 욕망을 먼저 꺼내보자. 자신까지 속이는 지독한 가면 놀이는 그만하고. 욕망을 — 요컨대 돈과 명예 — 빼놓고 하는 일(사업) 얘기는 팥 없는 찐빵, 잉크 없는 만년필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다. 시간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1이 됐건, 1억이 됐건, 아예 배제하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끝없는 욕망을 탐닉하라는 뜻이 아니라, 굳이 외면하거나 속이거나 숨기지는 말자는 뜻이다. 어쨌든 욕망은 밑빠진 독이니.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사고가 필요하다. 경제적 자유라느니, 욜로라느니, 파이어족이라느니 다 좋지만 너무 극단적이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면 안 된다. 과대 포장은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되, 스스로에게 끝없이 자문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내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정말 세상을 더 이로운 방향으로 만들고 있는가. 내가 믿고 싶은 건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며, 청중은 누구인가. 또 나와 나의 브랜드(내 일, 페르소나)는 어떤 관계인가.
브랜드를 만들면 만들수록 '내 브랜드'에 대한 생각은 점점 옅어진다. 우리가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의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를 고려해야 한다. 티셔츠 한 장 만드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취향이라는 그럴싸한 단어 뒤에 비겁하게 숨어있는 이기적인 욕망을 끄집어내야 한다. 팔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은 분명히 다르다.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게 하는 것과 필요 없는 제품을 사고 싶게 하는 것 역시 전혀 다른 이야기다. 브랜드를 만드는 행위 안에 이 모든 질문들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