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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LANNER’S PERSPECTIVE
기획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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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의 시선 #14
Dec 16. 2025





‘어쩔 수가 없다’로 유지되는 병원 간판의 풍경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된 병원 간판은 ‘사람을 돌보는 공간’이라기보다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공간’처럼 보인다. 형형색색의 과도한 색감, 지나치게 큰 사이즈, 경쟁적으로 덕지덕지 붙인 정보들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린다. 간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병원이 사회와 환자를 대하는 태도의 가장 외부적인 언어다. 문제는 단순한 미감의 차원이 아니다. 이러한 간판들은 병원이 지녀야 할 공공성, 신뢰감, 치유의 분위기와는 반대되는 시각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결국 환자를 배려하기보다, 환자의 시선을 쟁취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중 대부분이(거의 전부) 명백히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크기, 설치 위치, 조명 방식 등에서 현행 규정을 위반하면서도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얻는 수익에 비해 벌금이 싸기 때문이다. 불법을 감수하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순간, 규범은 기준이 아니라 비용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관행이 지속될수록 도시는 시각적으로 피로해지고, 병원이 밀집한 거리일수록 경관은 급격히 훼손된다. 불법을 저지르는 쪽이 오히려 시각적 우위를 점하고, 규정을 지키는 병원은 손해를 보는 구조가 굳어지는 것이다.
    이 구조를 유지시키는 또 하나의 축은 소비자의 침묵이다. 병원 간판이 지금의 형태로 반복되는 이유는 여전히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공격적인 간판이 단기적인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다수의 원장들은 이를 미감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 속으로 밀려난다. 환자들이 과도하게 요란한 간판, 공격적인 문구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 감각을 선택으로 드러내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 제기다. 소비자가 “이건 병원답지 않다”고 말하기 시작할 때, 변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개별 병원의 자율에 맡길 사안이 아니다. 반드시 제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반복 위반에 대한 강력한 제재, 실질적인 강제 철거, 의료 시설에 특화된 간판 가이드라인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가 아니라, 공공 환경을 설계하는 행위에 가깝다. 이 사안이 단순히 앞으로 간판을 ‘예쁘게 만들자’는 제안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는 병원이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환자의 시선을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병원은 돌봄의 주체가 아니라 경쟁의 객체가 된다.





    기획자의 시선

프로젝트룸 대표 기획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
A PLANNER’S PERSPECTIVE

A Personal Note from Project Room’s Director